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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수라 작성일20-11-14 16:28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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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와의 플레이오프 3승 1패로 KS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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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 ⓒ 뉴시스

두산 베어스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현존 최강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두산은 1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KT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서 2-0 승리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기록한 두산은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고 정규 시즌 NC와 올 시즌 챔피언 자리를 놓고 7전 4선승제 맞대결을 벌인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오는 17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다.

두산은 이번 승리로 6년 연속이자 통산 14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역대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진출했던 팀은 삼성 라이온즈로 무려 18번에 나서 8번의 우승(1985년 통합 우승 포함)과 10번의 준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두산은 삼성 다음으로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팀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만 무려 12번이나 최종 무대에 오르는 등 현대 야구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제 우승에 도전하는 두산은 왕조의 구축이라는 또 다른 목표에 정조준하고 있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는 40년 가까이 시즌을 치르며 4개 왕조를 배출했다. 80~90년대를 관통하는 해태 타이거즈와 2000년대 첫 왕조였던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한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다.

이들 4개 왕조가 이뤄낸 한국시리즈 우승만 19회로 전체 지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해태 왕조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연패를 이룬데 이어 이후 4번의 우승을 더해 총 8차례 정상에 등극했다. 특히 이 시기 해태는 12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기를 보내면서 단 한 번도 5할 승률 이하를 기록하지 않았고, 승차가 벌어져 준플레이오프가 무산된 1995년을 제외하면 매해 가을 야구를 맛봤다.

짧고 굵었던 현대 왕조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매번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4번 한국시리즈에 승선해 모두 우승 깃발을 들어 올리며 시대의 강자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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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진출 횟수 순위. ⓒ 데일리안 스포츠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은 SK와 삼성의 천하였다.

2007년 김성근 전 감독 부임과 함께 단숨에 우승권으로 도약한 SK는 강점을 살리기 보다는 약점을 지워나가는 스타일로 경쟁팀들을 물리쳤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총 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2009년은 페넌트레이스서 승차 없이 승률서 밀린 2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전적 3승 4패를 기록, 그야말로 한 끗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SK 왕조가 저물자마자 등장한 삼성은 갖가지 기록을 갈아치웠다. 역대 최초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삼성 왕조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다가 불법해외원정도박 파문 등 주축 선수들이 이탈하는 악재를 맞았고 2015년 준우승으로 왕조를 마감했다.

이제 두산 베어스가 5번째 왕조에 도전한다. 프로 원년 우승을 비롯해 1995년과 2001년에도 우승을 경험했던 두산은 2000년대 말부터 이른바 ‘화수분 야구’를 앞세워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유망주들의 발굴과 성장이 거듭되던 2015년, 김태형 감독 지도 아래 4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듬해에는 역대 최다승(93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KIA, SK에 밀리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 정상 탈환에 성공한 두산은 5년간 3회 우승, 2회 준우승이라는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올 시즌까지 패권을 거머쥔다면 이견이 없는 왕조의 탄생이다.

데일리안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 앵커멘트 】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는 이른바 '영끌'에 집값까지 올랐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핀셋 규제에 나섰습니다.
오는 30일부터 1억 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고 1년 내에 규제지역의 주택을 사면, 대출액을 회수해갑니다.
김문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33살 이 모 씨, 대출을 끼고 4억 원 초반대 전셋집에 살고 있었지만 집에서 나와야 합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기로 했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집주인도 이 집을 내주고 다른 집에서 전세를 살면서 똑같은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전셋집 세입자
- "그분도 '전세로 살고 있는 집에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하여 주변 매물을 알아봤는데 주변 시세가 너무 올라서 본인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씀하셔서…."

내년 1월이 만기이지만, 집은 못 구했습니다.

▶ 인터뷰 : 전셋집 세입자
- "전세대출에 신용대출까지 다 해서라도 주변으로 찾아보려 했지만 매물 자체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미 (살던 집도) 전세가가 2년 사이에 3억 원 올랐고…."

정부는 급증한 신용대출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잇따른 주택 매매·전세 가격의 상승세에 '핀셋 규제'에 나섰습니다.

「기존에는 규제지역의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을 때만 DSR 적용이 됐지만, 오는 30일부터는 연소득 8천만 원 초과에 신용대출 1억 원 초과인 이들도 규제 대상입니다.」

「은행 DSR 비율은 40%, 그러니까 연소득이 1억 원인 고소득자라면 연간 갚아야 할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가 4,000만 원 이내여야만 합니다.」

여기에 더해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고액 신용대출(1억 초과)은 사후용도 관리를 강화합니다.

▶ 인터뷰 : 도규상 /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신용대출 총액 1억 원을 초과하여 받은 차주가 1년 이내에 규제지역 내 주택을 구입할 경우, 해당 신용대출은 회수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서민금융상품과 전세자금대출, 주택연금 등은 DSR에서 제외해, 서민과 전세 세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MBN뉴스 김문영입니다. [nowmoon@mbn.co.kr]
“15세 노예 소녀. 건강하고 성경험 없음.”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세요. 숫처녀 보장.” 과연 우리는 19세기 중반 미국보다 낫다고 부끄러움 없이 자부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어떠한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까.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근처에는 고레(Goree)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곳은 16세기 이래 아프리카 연안 최대의 노예무역 중심지였어. 1782년 네덜란드인이 세운 노예 창고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문에는 ‘돌아오지 않는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흑인 수천만 명이 그 문을 나선 뒤 노예선에 실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기 때문이야. 수백 년간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수는 수천만 명에 이른다. 특히 북미 대륙에 끌려온 흑인 대부분은 이 서아프리카 출신이었어. 1619년 “적어도 세 명의 여자를 포함한 20명의 흑인을 실은 한 척의 범선이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우연히 상륙(벤저민 콸스 지음 〈미국 흑인사〉)”한 이후 흑인들은 대량으로 ‘수입’되어 온갖 학대를 겪으며 피비린내 나는 미국사의 일부를 구성하게 돼.


©EPA세네갈 다카르 인근의 고레섬은 16세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파워사다리
노예 ‘수입’만 해서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던 백인들은 노예들의 ‘재생산’에도 관심을 쏟았지. 수전 브라운밀러는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에서 그 끔찍한 시절에 대해 이렇게 썼어. “노예제의 어휘에서는 ‘번식용 여자(breeder woman)’ ‘애 밸 수 있는 여자’ ‘새끼 치기엔 너무 늙은’ ‘번식용 여자가 아닌’ 등의 표현이 평범한 서술어였다. 1807년에 아프리카인 노예 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대농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번식을 통해 노예를 얻는 일이 중요해졌다.” 오늘은 흑인 여성 ‘범죄자’ 두 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1850년 미국 미주리주에 사는 농장주 로버트 뉴섬은 셀리아라는 이름의 열네 살 흑인 소녀를 노예로 사들인다. 이미 환갑을 넘긴 홀아비 뉴섬은 집안일 시킬 하녀로 셀리아를 샀다고 둘러댔지만 흑심은 따로 있었지. 그는 셀리아를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셀리아는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고, 셋째를 임신하게 돼. 그즈음 셀리아는 몸이 좋지 않았지만 뉴섬은 전혀 개의치 않고 셀리아를 괴롭혔지. 견디다 못한 셀리아는 뉴섬의 딸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거절당했다. 아픈 몸 이외에도 셀리아에게는 뉴섬을 완강히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었어. 흑인 노예 조지와 사귀고 있었고 조지는 뉴섬과 셀리아와의 관계를 당연히 꺼려했거든. 셀리아는 뉴섬에게 경고한다. “이제 그만해요. 또 이러면 주인님을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855년 6월23일 뉴섬은 또다시 셀리아의 오두막을 찾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셀리아는 몽둥이를 들어 뉴섬을 때려죽이고 시신을 불태워버렸다. 범죄 사실이 밝혀졌고 셀리아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돼. 당시 변호인들은 셀리아를 변호하기 위해 미주리주의 법령을 인용했다. “어떤 여성이든 그녀의 의지에 반하여 불법적인 협박과 속박을 통해 그녀를 더럽히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판사는 막무가내였고 백인 농부이자 노예 소유주였던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한다. 법령에 나오는 ‘어느 여성이든(any woman)’에 흑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거야. “미주리 법정은 한 인간으로서 셀리아의 기본적인 권리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셀리아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백인 남성이 여자 노예를 성폭행했다 하더라도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공표한 것이다(김인선 ‘미국 노예제 시기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성적 착취’).”

흑인 여성들은 노예 노동과 주인의 성 착취로 고통받았고 때로는 흑인 남자로부터도 괴로움을 당해야 했던 사회적 최약자였어. 뉴섬을 거부하라고 셀리아를 압박했던 남자 노예 조지는 셀리아를 배신하고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한 뒤 종적을 감춰버렸지. 셀리아는 ‘세 번째 아이를 낳은 뒤에야’ 교수대에서 처형당한다. 이유는 그 아이가 ‘뉴섬가의 재산’이었기 때문이야.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이어받는다는 현실은 흑인 여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어. 셀리아가 사형당한 다음 해인 1856년 일어난 마거릿 가너 사건은 그 아픔을 처절하게 드러내주었지. 마거릿 가너는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혼혈 노예였어. 마거릿은 흑인 노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장남 이외에 그녀의 아이들은 백인 주인의 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해. 그녀 역시 주인의 성적 착취 대상이었던 거야. 자식들에게 자신의 삶을 물려주기 싫었던 마거릿은 목숨 걸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자유 주였던 오하이오에 발을 디딘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Laws)’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 특정 주에서 다른 주로 도망간 노예는 반환돼야 하고, 노예 탈출을 돕거나 숨겨준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이었어. 켄터키의 노예 사냥꾼들은 오하이오까지 마거릿의 가족을 추격했고 그녀는 곧 그들에게 덜미를 잡혀. 그때 마거릿은 칼을 들어 아이들을 찔렀어. 다시 노예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울부짖음이 섞여 나왔겠지. 다른 아이들은 상처만 입었지만 두 살배기 딸은 그만 목숨을 잃었단다.


©Thomas Satterwhite Noble의 1867년 회화‘현대판 메데’라 불리는 토머스 새터화이트 노블의 작품(1867). 메데는 남편에 대한 복수로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죽인다. 하지만 흑인 노예 마거릿 가너를 메데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우리 시대 역시 야만으로 상정될 수 있다


변호인들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마거릿 가너를 오하이오주에서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어. 노예에 관대했던 오하이오주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지. 하지만 검사는 도망노예법대로 켄터키에 돌아가 재판받아야 한다고 고집했어. 그 죄명은 살인죄가 아니었단다. “주인의 재산을 손괴한” 혐의였지. 즉 마거릿이 죽인 건 그녀의 딸이기에 앞서 주인의 재산이라는 판단이었던 거야. 마거릿은 켄터키로 송환되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은 면했어. 송환되는 도중 마거릿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일어났어도 그녀는 슬퍼하지 않았다고 해. 왜 슬프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슬픔을 상쇄할 뿐이었겠지.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너는 분개할 거야. 또 야만적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겠지. 하지만 기억하렴. 그 시대에 비해서는 적잖이 나아졌을지라도 우리 시대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야만으로 상정될 수도 있음을. “15세가량의 노예 소녀. 튼튼하고 건강. 성경험 없음(위 김인선의 논문)”이라는 19세기 미국의 광고 문구와 비슷한 글귀를 아빠는 15년쯤 전, 우리나라에서도 목격한 바 있단다. “동남아 ○○○ 여자와 결혼하세요. 숫처녀 보장.” 지금은 확연히 개선됐고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의 일부가 돼 있지만 외국인 신부들과의 국제결혼 초기 저런 문구가 버젓이 통용된 것은 참혹하리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신을 유린하던 주인을 몽둥이로 내리치던 셀리아 같은 처지의 여성은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아. “이 각박한 세상에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어”라며 아이들의 목숨을 거두는 부모의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19세기 중반 미국보다 낫다고 부끄러움 없이 자부할 수 있을까? 많은 미국인들은 셀리아와 마거릿 등 노예제 희생자들의 참상을 목도하고 뼈저리게 반성하며 노예해방의 깃발을 들었고 그들의 역사를 바꿨다. 동시에 그만큼 많은 미국인은 노예들의 절규를 외면했고, 자신들의 야만적 편견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인종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150년 후 지금의 미국 모습이 그 결과일 테지. 너희들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보기 바란다. 너는 어떤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를 말이다.

김형민(SBS CNBC PD) editor@sisain.co.kr
“15세 노예 소녀. 건강하고 성경험 없음.”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세요. 숫처녀 보장.” 과연 우리는 19세기 중반 미국보다 낫다고 부끄러움 없이 자부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어떠한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까.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근처에는 고레(Goree)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곳은 16세기 이래 아프리카 연안 최대의 노예무역 중심지였어. 1782년 네덜란드인이 세운 노예 창고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문에는 ‘돌아오지 않는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흑인 수천만 명이 그 문을 나선 뒤 노예선에 실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기 때문이야. 수백 년간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수는 수천만 명에 이른다. 특히 북미 대륙에 끌려온 흑인 대부분은 이 서아프리카 출신이었어. 1619년 “적어도 세 명의 여자를 포함한 20명의 흑인을 실은 한 척의 범선이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우연히 상륙(벤저민 콸스 지음 〈미국 흑인사〉)”한 이후 흑인들은 대량으로 ‘수입’되어 온갖 학대를 겪으며 피비린내 나는 미국사의 일부를 구성하게 돼.


©EPA세네갈 다카르 인근의 고레섬은 16세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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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수입’만 해서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던 백인들은 노예들의 ‘재생산’에도 관심을 쏟았지. 수전 브라운밀러는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에서 그 끔찍한 시절에 대해 이렇게 썼어. “노예제의 어휘에서는 ‘번식용 여자(breeder woman)’ ‘애 밸 수 있는 여자’ ‘새끼 치기엔 너무 늙은’ ‘번식용 여자가 아닌’ 등의 표현이 평범한 서술어였다. 1807년에 아프리카인 노예 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대농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번식을 통해 노예를 얻는 일이 중요해졌다.” 오늘은 흑인 여성 ‘범죄자’ 두 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1850년 미국 미주리주에 사는 농장주 로버트 뉴섬은 셀리아라는 이름의 열네 살 흑인 소녀를 노예로 사들인다. 이미 환갑을 넘긴 홀아비 뉴섬은 집안일 시킬 하녀로 셀리아를 샀다고 둘러댔지만 흑심은 따로 있었지. 그는 셀리아를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셀리아는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고, 셋째를 임신하게 돼. 그즈음 셀리아는 몸이 좋지 않았지만 뉴섬은 전혀 개의치 않고 셀리아를 괴롭혔지. 견디다 못한 셀리아는 뉴섬의 딸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거절당했다. 아픈 몸 이외에도 셀리아에게는 뉴섬을 완강히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었어. 흑인 노예 조지와 사귀고 있었고 조지는 뉴섬과 셀리아와의 관계를 당연히 꺼려했거든. 셀리아는 뉴섬에게 경고한다. “이제 그만해요. 또 이러면 주인님을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855년 6월23일 뉴섬은 또다시 셀리아의 오두막을 찾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셀리아는 몽둥이를 들어 뉴섬을 때려죽이고 시신을 불태워버렸다. 범죄 사실이 밝혀졌고 셀리아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돼. 당시 변호인들은 셀리아를 변호하기 위해 미주리주의 법령을 인용했다. “어떤 여성이든 그녀의 의지에 반하여 불법적인 협박과 속박을 통해 그녀를 더럽히는 것은 범죄다.” 그러나 판사는 막무가내였고 백인 농부이자 노예 소유주였던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한다. 법령에 나오는 ‘어느 여성이든(any woman)’에 흑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거야. “미주리 법정은 한 인간으로서 셀리아의 기본적인 권리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셀리아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백인 남성이 여자 노예를 성폭행했다 하더라도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공표한 것이다(김인선 ‘미국 노예제 시기 흑인 여성 노예에 대한 성적 착취’).”

흑인 여성들은 노예 노동과 주인의 성 착취로 고통받았고 때로는 흑인 남자로부터도 괴로움을 당해야 했던 사회적 최약자였어. 뉴섬을 거부하라고 셀리아를 압박했던 남자 노예 조지는 셀리아를 배신하고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한 뒤 종적을 감춰버렸지. 셀리아는 ‘세 번째 아이를 낳은 뒤에야’ 교수대에서 처형당한다. 이유는 그 아이가 ‘뉴섬가의 재산’이었기 때문이야.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이어받는다는 현실은 흑인 여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어. 셀리아가 사형당한 다음 해인 1856년 일어난 마거릿 가너 사건은 그 아픔을 처절하게 드러내주었지. 마거릿 가너는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혼혈 노예였어. 마거릿은 흑인 노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장남 이외에 그녀의 아이들은 백인 주인의 자식으로 추정된다고 해. 그녀 역시 주인의 성적 착취 대상이었던 거야. 자식들에게 자신의 삶을 물려주기 싫었던 마거릿은 목숨 걸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자유 주였던 오하이오에 발을 디딘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Laws)’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 특정 주에서 다른 주로 도망간 노예는 반환돼야 하고, 노예 탈출을 돕거나 숨겨준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이었어. 켄터키의 노예 사냥꾼들은 오하이오까지 마거릿의 가족을 추격했고 그녀는 곧 그들에게 덜미를 잡혀. 그때 마거릿은 칼을 들어 아이들을 찔렀어. 다시 노예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울부짖음이 섞여 나왔겠지. 다른 아이들은 상처만 입었지만 두 살배기 딸은 그만 목숨을 잃었단다.


©Thomas Satterwhite Noble의 1867년 회화‘현대판 메데’라 불리는 토머스 새터화이트 노블의 작품(1867). 메데는 남편에 대한 복수로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죽인다. 하지만 흑인 노예 마거릿 가너를 메데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우리 시대 역시 야만으로 상정될 수 있다


변호인들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마거릿 가너를 오하이오주에서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어. 노예에 관대했던 오하이오주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지. 하지만 검사는 도망노예법대로 켄터키에 돌아가 재판받아야 한다고 고집했어. 그 죄명은 살인죄가 아니었단다. “주인의 재산을 손괴한” 혐의였지. 즉 마거릿이 죽인 건 그녀의 딸이기에 앞서 주인의 재산이라는 판단이었던 거야. 마거릿은 켄터키로 송환되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은 면했어. 송환되는 도중 마거릿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일어났어도 그녀는 슬퍼하지 않았다고 해. 왜 슬프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슬픔을 상쇄할 뿐이었겠지.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너는 분개할 거야. 또 야만적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겠지. 하지만 기억하렴. 그 시대에 비해서는 적잖이 나아졌을지라도 우리 시대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야만으로 상정될 수도 있음을. “15세가량의 노예 소녀. 튼튼하고 건강. 성경험 없음(위 김인선의 논문)”이라는 19세기 미국의 광고 문구와 비슷한 글귀를 아빠는 15년쯤 전, 우리나라에서도 목격한 바 있단다. “동남아 ○○○ 여자와 결혼하세요. 숫처녀 보장.” 지금은 확연히 개선됐고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의 일부가 돼 있지만 외국인 신부들과의 국제결혼 초기 저런 문구가 버젓이 통용된 것은 참혹하리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신을 유린하던 주인을 몽둥이로 내리치던 셀리아 같은 처지의 여성은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아. “이 각박한 세상에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어”라며 아이들의 목숨을 거두는 부모의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19세기 중반 미국보다 낫다고 부끄러움 없이 자부할 수 있을까? 많은 미국인들은 셀리아와 마거릿 등 노예제 희생자들의 참상을 목도하고 뼈저리게 반성하며 노예해방의 깃발을 들었고 그들의 역사를 바꿨다. 동시에 그만큼 많은 미국인은 노예들의 절규를 외면했고, 자신들의 야만적 편견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인종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150년 후 지금의 미국 모습이 그 결과일 테지. 너희들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보기 바란다. 너는 어떤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를 말이다.

김형민(SBS CNBC PD) editor@sisain.co.kr

서울 여의도 KB금융그룹 본사의 모습. /사진제공=KB금융그룹

[서울경제] KB금융그룹이 14일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다우존스인덱스가 발표한 2020 ‘다우존스 지속가능 경영지수(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DJSI)’에서 5년 연속 월드 지수(World Index)에 편입됐다. 또 은행산업 내 글로벌 2위 및 국내 1위를 차지했다.

KB금융은 이날 자료를 통해 “KB금융그룹이 2016년부터 5년 연속 DJSI 최고 등급인 월드 지수에 편입됐다”며 “특히 은행산업 내 글로벌 2위이자 국내 1위 기업으로 총 3회째 선정되며(2017, 2018, 2020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세부적으로 △지배구조ㆍ경제 △환경 △사회의 3개 부문으로 구성된 DJSI평가에서 KB금융은 지배구조ㆍ경제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KB금융 측은 “지배구조, 리스크관리, 정보보안, 지속가능한 금융 등의 개선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JSI는 기업을 경제적 성과 뿐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수다. 올해 DJSI 월드 지수 은행산업 부문에서는 글로벌 금융기관인 산탄데르(스페인), BNP파리바(프랑스), ABN AMRO(네덜란드), 국립호주은행(호주) 등 전 세계 25개 금융회사가 편입됐다.

KB금융은 지난 10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최우수기업(금융회사 1위)으로 선정된 바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국내외 가장 권위있는 ESG평가에서 KB금융이 모두 은행권 1위를 석권했다”며 “앞으로도 ESG 선도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주연 키아누 리브스도 현장에…참석자 "다수가 마스크 안 썼다"
제작사 "파티장면 촬영" 해명…보건당국 "사전 신고 없었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포함한 블록버스터 영화 '매트리스' 제작진이 독일에서 방역수칙을 어기고 대규모 파티를 열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14일(현지시간) 독일 빌트와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11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州) 포츠담시 '바벨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서 '매트릭스 4' 각본과 감독을 맡은 워쇼스키 자매가 주최한 파티가 열렸다.

파티는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참석자는 200여명에 달했다.

주연배우 키아누 리브스도 연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티에선 초밥 등 각종 음식물이 제공됐고 문신을 새기는 부스도 마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파티가 열린 바벨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선 지난 8개월간 '매트리스 3:레볼루션'의 16년 만의 후속작인 '매트리스 4'의 촬영이 진행돼왔다.

이 스튜디오가 있는 브란덴부르크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파티인원을 50명까지로 제한한 상황이다.

또 파티 참석자들은 당국의 사전승인을 받은 뒤 자체 방역지침과 '거리두기'를 준수하고 음식물을 먹을 때를 빼곤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하지만 매트릭스 4 파티에 참석한 39세 여성은 빌트에 "흥이 넘치는 분위기였고 파티장에 올 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지만 파티 중엔 다수가 마스크를 안 썼다"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바벨스부르크 스튜디오 측은 dpa통신에 "(영화에 필요한) 파티장면을 촬영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스튜디오 대표인 크리스토프 피서는 "엑스트라 110명과 스태프 200명 등 팀 전체가 촬영 전 두 차례 유전자증폭(PCR) 검사와 촬영 후 한 차례 신속검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연배우 리브스는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빌트는 "어떤 연기지시도 없었고 슬레이트를 치거나 촬영하는 사람도 없었다"는 참석자 말을 인용하며 매트릭스 4 제작진이 방역지침을 우회해 파티를 열고자 촬영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포츠담시 보건당국은 사전에 신고된 파티가 아니었다면서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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